공연소개하는남자


 

선거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선거는 정말 많은 사건과 이슈가 있었습니다.
또한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바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도 궁금합니다
한 편으로는 이런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바람에 흔들리는 민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말려드는 현실이 말입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이런 바람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여기 저기서 섬기겠다는 말들로 사람들을 만나는 정치인들을 보면
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마틴루터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 국가의 번영을 결정짓는 것은
     풍부한 재정이나
     튼튼한 국방력,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라
  '교양 있고 예절바른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다.
    
즉, 많이 배운 '깨어 있는 인격자'들이 얼마나 많은가가
    
한 국가의 번영을 결정짓는 다는 말이다.
    
한 국가가 이 세상에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것에서이다."


우리는 깨어있는, 능력있는 지도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깨어있고 능력있기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그런 무지와 무관심이 어찌보면 이 정치판을 더럽게 만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기와 욕구, 욕망, 야욕을 표출하는 장소로 말이죠.
시민들 스스로가 깨어 있지 않으면 국가의 번영은 하루 아침에 몰락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주요정책들의 논의가 배제된 채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깨어 나야 합니다.

일제시대때 국민을 일깨우던 “계몽운동”이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다시 필요하다는 현실은 웬 말입니까?
선거를 앞두고 정당을 보시겠다구요?
정당이 아닌, 정책을 보시길 바랍니다.

“매니페스토”

정책의 비교를 통해 일꾼을 뽑을 수 있습니다.


매니페스토 홈페이지입니다.
한번 가 보셔서 여러분 지역의 후보들의 공약들을 비교하고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자세하게 자신의 공약을 설명한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대충 서술해 놓은 불성실한 후보도 있더군요.
그렇게 불성실한 공약들을 갖고 나와 '정당'의 힘을 얻고 뽑힌다면 과연 '정당'할까요?

여러분의 지역구에 누가 어떤 공약을 갖고 나왔는지 한번 비교해 보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남았으니 말입니다.

http://www.manifesto.or.kr/



 

매니페스토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 넘겨주기 [[]]매니페스토 (Manifesto)는 개인이나 단체가 대중에 대하여 확고한 정치적 의도와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연설이나 문서의 형태이다. 종종 비정치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때에도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예산확보, 구체적 실행계획 등이 있어 이행이 가능한 선거 공약의 의미로 주로 쓰인다.

라틴어 manifestum에서 파생한 이탈리아어이며, 의미는 '분명한 의미', '매우 뚜렷함'이라는 의미이다. 이 라틴어는 현대 영어에서의 manifest((특히 감정・태도・특질을 분명히) 나타내다, (보거나 이해하기에) 분명한)의 어원이기도 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영어권에는 1620년 영국의 나타니엘 브렌트가 이탈리아인 파울로 사프리의 책을 번역한 "History of the council of Trent"에서 처음 나타난다.

비이탈리아어권에서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를 살펴보면, 벨기에의 독립선언서였던 "the Manifesto of the Province of Flanders (1790년)"가 미국 독립선언서에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나 정당정치에서 정책과 정강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로 쓰인 것은 1835년 영국 탐워스 선거구의 보수당 후보였던 로버트 필의 "Tamworth Manifesto"가 효시이며 이후 영국의 총선에서는 각 정당이 책자로 된 매니페스토를 베포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매니페스토에 따를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1947년 하원에서 법적인 구속력은 부정되었으나 성격상 정치적인 구속력은 존재한다.

한국에서 쓰이는 선거 공약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선거공약과는 다르게 매니페스토는 구체적인 시책, 실시 기한, 수치 목표를 명시한 사후 검증 가능한 명확한 공약으로, 평가 기준으로는 공약의 구체성, 검증 가능성, 달성 가능성, 타당성, 기한 명시 등 5가지다. 첫 글자를 따서 '스마트(SMART)'라고 하며, 이를 지수화해서 공약을 평가한다. 또 공약의 지속성, 자치력 강화, 지역성, 후속조치를 의미하는 셀프(SELF)지수로도 평가한다. 1997년 영국 노동당토니 블레어가 매니페스토 10대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집권에 성공했으며, 일본에서는 영국을 모델로 하여 1998년 통일지방선거 때에 처음으로 매니페스토의 개념이 선을 보였다. 2003년 일본에서는 가나가와현의 지사 선거에서 마쓰자와 시게후미 후보가 매니페스토 37가지를 공표해 당선됐다.

한국에서는 2006년 5월 31일의 지방선거를 계기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선거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구체적이고 실현이 가능한지 평가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전개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연고주의에서 벗어난 한 단계 높은 선거문화와 정치문화로의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이 정치적인 견해를 분명히 하기 위한 매니페스토로는 버트런드 러셀아인슈타인이 핵과 핵전쟁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Russell-Einstein Manifesto (1955년)"가 유명하다.

예술분야에서는 이탈리아 시인 피리포 토마소 마리네티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Futurist Manifesto(프랑스어:Manifeste du futurisme 1909년)이 효시이다.[1]

기술분야에서는 리처드 스톨만의 "GNU Manifesto(GNU 선언문 1985년)가 유명하다.



[덜뜨기의 마음으로 담는 세상 = 허윤기]

Posted by 공소남 허윤기 덜뜨기


어제였다. 4.19혁명...
1960년 4월 19일, 그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독재와 억압에 항거한 시민들의 혁명, 자유에 대한 갈망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어제는 이 나라의 소위 대통령이라는 '분'의 연설이 있었다.
눈물의 장면에서 TV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정말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군 통수권자로서 겪어야 할 아픔이었을까?
기득권에 대한 수호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읽은 문구가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조선시대 당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1년에 1.6명꼴이다. 
우리 선조들은 당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의'라는 말을 썼단다.
당의의 기본원리는 '상대방의 존재와 비판에 대한 인정'이다.

당의가 가장 치열했던 숙종시절 백성은 가장 살기 좋았단다.
왜냐하면 숙적이 눈에 불을 켜고 잘못을 지켜보고 있으니 잘못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17세기 중엽이 넘어가며 정의와 공익, 공론을 위하던 당의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변질되었다.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서...

<조선시대 당쟁사 요약>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지도력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과거 4.19의 모습이 그러하다.
자신의 잘못을 포장하고 변명하며, 그것을 이해시키며 눈물이라는 저급한 Pathos로 다가간다면
잠깐의 설득은 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기에 포기할 것이 두려워 하는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상대를 숙청했던 17세기 당의의 모습이 오늘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오늘 인터넷 기사에는 '대통령마저 외면한 금양호 98호 선원'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들 또한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비극일진정,
이들을 위한 눈물과 역사의 비극에 대한 눈물은 어디로 갔는가?

   "민중은 무지하다. 
    그러므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들의 기억에서 속히 사라질 것이다."

혹시 이런 시대적 착오를 갖고 언론을 장악하는 자는 결국 그 언론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역사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괴벨스처럼 '1%의 진실과 99%의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한다면
얼만큼은 효과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의 결국은 그러하지 못하다.





1960년 4월 19일, 그 날의 함성과 열기는 오늘날 사그러지고 없다.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유행을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4.19가 무슨 날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답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역사'를 선택으로 바꾸는 교육이야말로 민중을 무지로 이끄려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는 그 역사를 반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양심은 경제인의 왈력에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현실이 시대적 유행이라면 나는 그 유행을 과감히 버리겠다.

1905년 11월 20일, 그 날의 시일야방성대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장지연 선생의 슬픔의 글은 마치 성서의 예레미야의 애가(슬픈노래)와 다를바가 없다.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시일야 방성대곡 한글 번역문>


시일야 방성대곡,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리라'

구구절절 애절함과 애통함이 묻어나는 장지연 선생의 글이 작금의 시대에 병행댓구로 자꾸 생각이 날까?
쇠고기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천안함의 슬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그 날의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 더욱 슬프다.

그 날에 그렇게 사라져 간 그들의 피흘림의 자취가 
오늘의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래본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는 없겠으나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는 자가 없는 현실이 나를 더욱 술푸게 한다.


[덜뜨기의 마음으로 담는 세상=허윤기]

Posted by 공소남 허윤기 덜뜨기
[사진은 전남함입니다. 천안함과 같은 급의 배입니다. 지인께서 전남함 함장님을 역임하셔서 사진을 구했습니다.]



김덕규씨가 올린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전문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772 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 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   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예전에 해군본부교회에서 사역할 때, 8전단장 이취임식때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촬영했던 사진입니다.
이들 모두 수병들인데, 이들의 후임이 그 천안함에 있을지도 모르고,
혹 이 자리에 계셨던 부사관께서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뭉클합니다.

부디 모두 무사귀환하길 기도합니다.

[덜뜨기의 마음으로 담는 세상=허윤기]
Posted by 공소남 허윤기 덜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