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담는 세상

대전의 극단, 나무시어터가 창작 초연으로 드림아트홀에서 올린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작품은  2014년 4월 9일(수) ~ 13일(일)까지 대전의 1호 소극장 드림아트홀의 무대에 올렸습니다

[내 마음 속 기억의 방 낯선 곳에서 홀로 선 나를 만나다 /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마지막 장면]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대체 무슨 내용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 연극의 부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 속 기억의 방, 낯선 곳에서 홀로 선 나를 만나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부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전의 소극장 연극은 이름모를 정감과 애착이 갑니다.

특히 대전의 소극장 연극의 참 맛은 바로  창작초연되는 연극을 만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연극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어둠의 텅빈 공간을 울리는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채웁니다.

바로 이때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 대준(이대준 역 / 성용수 분)이 전화를 받습니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걸려 온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모를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며 전화를 받습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오래전에 헤어진 아버지가 소매치기를 하다가 걸렸으니 와서 신원확인과 함께 

아버지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아버지를 데려가기는 커녕 짜증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겠지요?




어쩔 수 없이 경찰서에 가서 아버지(남철 역 / 조중석 분)를 데려온 대준은 무언가 원망과 비아냥으로

아버지를 대합니다. 대체 이 부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아버지의 폭력일까요? 아니면 외도? 대체 왜 ??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원망,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 가슴아픈 감정을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눈빛에서 드러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인 대준은 큰 집을 만들었으나 그 큰 집엔 단 한 개의 방만이 있습니다.

집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방....

대준은 아버지 남철에게 아버지를 위한 방을 만들었다고 하자 

아버지는 고마워 하며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방은 아버지를 가두기 위한 방으로 만들었으니....





아버지 남철은 밖에서는 열 수 있으나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방, 그 방에 갇혀 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아버지...

아들 대준에게 왜 이러는지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그냥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럼, 대준의 어머니는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궁금해 졌습니다.


이야기는 잠시 대준이의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이 어릴적 이야기를 통해 대준이 겪었던, 그리고 대준의 아버지가 겪었던 끔직한 과거의 기억을 드러냅니다.




대준은 곱사등이로 태어나 친구로부터 놀림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대준의 어머니(남명옥 분)는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대준은 사막에서 사는 인내의 동물, "낙타"라며 아들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대준은 자신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 안에서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대준을 품에 품고 한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안타까움일까요?


미안함일까요?


대준 어머니의 이름모를 슬픔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대준이 아버지와 함께 받아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준의 어머니는 빨간 구두를 신고 장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불길해 집니다.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비보가 날아듭니다.

대준의 어머니가 목을 메고 자살을 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연극의 초반에서는 그 이유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면서 대준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 드러냅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지금의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대준이 바로 초로기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대준은 자신이 초로기 치매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아버지가 대준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연극은 다시 대준이의 어머니, 남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돌아갑니다.



아내를 잃은 남철(대준의 아버지)는 술집여자(지선경 분)을 통해 

그 슬픔을 잊어보려 하며 그렇게 술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슬픔을 잊기 위해...

그렇게 아픔을 잊고 싶어서 말입니다.




잠시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이 가정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대준은 받아쓰기를 하고 그런 기특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평범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대준의 어머니는 갑자기 비탄해 하며 대준이가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바로 우울증인 것입니다.

대준의 아버지, 남철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보듬어 주기만 했던 것입니다.


남철은 뒤늦게 아내의 우울증을 몰랐던 자신의 무지함에 애통해 합니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낸 남철은 그렇게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감정이 남철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원망감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렇게 우울증에 걸려 

빨간 구두를 신고 저 먼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 곱사등이로 태어난 대준이 때문이라는 원망감...

슬픔의 감정이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변해지는 순간

그렇게 따뜻했던 아버지는 무서움의 대상으로, 원망의 대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남철은 자신의 곱사등이 아들을 창피해하며 


작은 골방에 가두고 폭행을 하며 자신의 슬픔을 잊어보려, 자신의 죄책감을 떨쳐버리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서로에게 아픔만을 줄 뿐입니다.



시간은 흘러...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초로기 치매에 걸린 아들 대준은 잠시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초로기 치매에 걸린 대준은 흡사 이중인격을 가진 지킬과 하이드처럼 

자신의 감정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을 잃어버리며,

지금의 자신을 잊어버리며...

다시 치매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초로기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서 근육도 이상이 오게 됩니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남철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를 합니다.

자신이 결국 대준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또 다시 그를 엄습합니다.

그 옛날에 자신의 아내를 떠나보내며 그가 겪었을 그 무거운 죄책감의 무게가 말입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신이 겪었던 절망과 아픔을 아들에게 설명하기보다는

기억을 잃은 아들을 앞에 두고 독백으로 내뱉습니다.





또 잠시 정신을 차린 대준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남철의 대사를 눈여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린 대준에게 급박한 마음으로 사죄를 하기 시작합니다.

대준이 기억을 잃기 전에 어릴 적 대준에게 했던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그 이야기에 남철은 원망과 미움, 그리고 애절함의 감정을 최고조로 드러냅니다. 

아버지의 애절함과 아들의 애절함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부자의 안타까움을 품어주기를 요구합니다.





남철의 눈물...

이 눈물....

아내를 잃은 슬픔의 눈물이며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죄책감을 폭력으로 휘둘렀던 후회감의 눈물이요,

그런 아들이 초로기 치매에 걸려 이렇게 무너져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리라...




타투이스트(남명옥 분)가 연극 초반부터 번갈아 등장을 합니다.

왜 타투이스트가 등장했을까?

그리고 이 여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의 답은 연극의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죽은 대준의 어머니와 닮은 타투이스트를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것 처럼 자신의 등을 만져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간 타투이스트에게 등 마사지만 시켰던 이유를 관객들에게 드러내줍니다.

그간 타투를 하지는 않고 그저 마사지만 시키던 대준과의 약속했던 마지막 만남이 끝나기 전에

이 타투이스트는 대준의 등에 문신을 새겨주고 싶어합니다.

무엇을 새겨달라고 했을까요?

아니, 무엇을 새겼을까요?






빨간 구두를 신고 자신을 떠나가는 어머니와 타투이스트가 오버랩되며

연극은 타투이스트와 대준의 어머니와의 연관성을 확인해 줍니다.


자신의 슬픔과 함께 곱사등이 자신의 아들 대준을 품던 그 어머니는

그렇게 빨간 구두를 신고는 

그 죄책감의 무게를 벗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슬픔과 아픔을, 그리고 희망을 하나로 묶어 놓습니다.

위에서 쏟아지는 모래가 땅에 모여 산을 이룹니다.

마치 낙타 등처럼 봉긋한 산을....



             


대준의 곱사등에 타투이스트가 새겨놓고 간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떠날 때 신고 갔던 그 빨간구두였습니다.

대준은 늘 그 어머니의 빨간구두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말했던 낙타 등 같은 모래의 산을 

어머니의 빨간 구두를 신고 넘어갑니다.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의 산을,

어머니를 잃은 아픔과 공허함의 산을,


그리고 초로기 치매에 걸려 잃어버렸던 낙타등과 같은 인내와 희망의 산을 넘어갑니다.






대준은 그 모래의 산봉오리 위에 어머니의 빨간 구두를 놓습니다.

그 산의 정상에,

자신의 절망와 아픔과 슬픔의 절정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 슬픔의 기억을 말입니다.





처음에 보여드렸던 연극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대준의 촛점을 잃은 두 눈빛을 통해 연극은 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요?


[연극의 원작자 정미진 작가]

"따스한 봄날에 꺼내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 한 구석에 작은 기억의 방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출 정우순]

"낙타가 삭막한 사막에 살 듯 우리들 삶 또한, 아프고 힘겨움의 연속입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찾기 위해, 사랑을 찾기 위해, 치유를 위해,

서로의 위로와 나눔으로 오늘도 내일도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아무도 모르는 미래로 우리는 다가서고 있습니다."


[연출 남명옥]

"폭력에 대한 기억으로 사랑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한 사람,

그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조차 더듬어가며

도덕적 요구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응원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현실에서는 부정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오직 자신만이 연민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연민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비극이다.

.......

그가 불러내는 기억은 현실과 과거, 환영까지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통스럽게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그 소리가 자꾸 들린다.

사랑해 달라고....."








낙타등 같은 곱사등이 대준의 모래 언덕 위에 놓여있는 엄마의 빨간구두...

자칫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은 하나의 소품이지만

이 연극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명옥 연출의 글에 있던 것 처럼 '그가 불러내는 기억은 현실과 과거, 환영까지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통스럽게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자꾸 그 소리가 자꾸 들린다. 사랑해 달라고...'



대준이 자신의 곱사등이 위에 새겨 놓은 엄마의 빨간 구두는,

이 모래 언덕위에 놓은 엄마의 빨간 구두는

자신의 슬픔에서, 자신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은 아닐런지...



연극은 우리에게 이 비극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콩가루 같은 우리의 가정이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 곳인지...

우리가 허비하며 버리는 기억의 단편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이는 사막, 인생이 사막일 수도 있어. 

견뎌야 하는데...제발..."


거친 사막에서 살아가는 낙타처럼 우리도 그렇게 인내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극단 나무시어터의 2014 창작초연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이야기였습니다.


Posted by 덜뜨기 덜뜨기

[Prologue]



연극은 <삽질>이라는 제목이 갖고 있는 의미처럼


모두가 각양각색의 삽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삽질 인생"의 비극에 대면하도록 한 후에


그 비극의 삶을 살아가는 관객 자신을 뜨겁게 도닥여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연극의 작품의도>


연극 <삽질>은 현실을 살아내는 나의 비극과 당신들의 비극에서 시작된 이야기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견고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삽질>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상적 비극은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연극같은 이야기, 


현실에는 없는 삶이라고 치부될 수 있겠으나, 


정미진 작가는 이 작품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쓸쓸한 자화상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삽질>은 부조리한 현실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극적 구성을 통해 잘 보여주었으며, 


감각적인 대사를 다루는 정미진 작가의 남다름이 또 한번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박사학위 보유자인 과외선생 영희, 등단한 지 7년이 넘은 소설가 남편 철수. 


이 두 사람이 살아내는 세상 속의 삽질. 그 허무함과 억울함이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게 하는 이 죽일놈의 삽질.




<남명옥 연출의 변>


“영희와 철수, 두 주인공은 처연한 유배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 처연한 삶을 그림자로 만화로 배우들의 몸으로 작품에서 대변하고자 합니다.


일상의 비운이 중첩된 작품 <삽질>을 비극이라 쓰고 희극이라 읽고자 합니다.


<삽질>을 통해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가끔 마주친 듯한 사람들 이야기.


웃다가 슬퍼질 그 이야기를 만나 


한순간 먹먹해지는 자신을 도닥여주실 수 있는 공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은 철수와 영희라는 


지극히 흔한 이름의 주인공을 등장시킵니다.



우선 영희는 개인과외로 돈벌이를 하지만 


그 역시 제대로 되지 않고


친정엄마는 끊임없이 돈을 요구합니다. 



거리에서 삽질하는 인부에게 


300원짜리 고급커피를 뽑아 건네지만


돌아오는 건 허무함과 억울함 뿐입니다. 




영희의 남편 철수는 등단한 지 7년이 넘은 소설가로


등단 이후로 단 한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한 채 


망상 속에 빠져 삽니다. 



그는 영웅을 기다리며 삽질을 하지만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합니다.










영희는 글을 쓰는 남편 철수를 위해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외 선생은 그저 과외선생일 뿐 입니다. 







철수는 등단한 지 7년이 넘은 소설가입니다.


철수는 자신의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 집 안에서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철수는 삽질을 하면서, 비타민과 같은 약을 의지하며


끊임없이 소설을 써내려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영희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고


남편은 끝을 모르는 집필 작업에 빠져 있습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영희,


그리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철수...


이 둘은 치열하고 처절한 삶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결국 영희는 과외를 더 늘려서 하기로 맘을 먹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 과외전단지를 자신들의 아파트에 붙여달라고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 역시 탐탁치 않습니다. 


친구들에게는 그런 철수와 영희가 안타깝지만 단지 동정의 대상일 뿐입니다. 



     


영희는 철수의 소설을 매일 읽습니다.


하지만 철수의 소설은 매일매일 달라집니다.


마우스 족과의 전쟁, M과의 전쟁...


"쥐는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에 싫다"는 영희,


하지만 철수는 쥐무리의 악당들과 싸우는 영웅을 동경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런 식으로 대입시키고 있는 듯 한 해학적 장면이었습니다.



     


철수는 모든 것이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자신과 계약하고자 하는 출판사들의 연락들로 인한 희망인 것이죠.


하지만 영희에게는 그것이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절망하는 영희에게 철수는 "케냐로 가자~~~!"며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희는.....




     


영희는 4달째 밀려 있는 과외비를 받으러 학생의 집에 찾아갑니다.


하지만 학생의 어머니는 몇 억은 굴릴 돈이 있어도


"모양 빠지게시리 자신의 지갑에 있는 4만원이라도 드려야 겠냐?"며 


과외 선생님에게 줄 120만원은 없다고 잡아 때는 면전에서


4만원 내놓으라고 손을 내미는 영희,


그리고 당황하는 과외학생 어머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의 표면과


실제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을 그림자로 표현함으로 


남명옥 연출은 그림자 기법* 을 통해 만화경 같은 이중의 메시지를 구성합니다.


* 그림자를 통한 내면의 메시지 표현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밀린 과외비를 결국 받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는 영희는


길거리에서 삽질을 하는 할아버지 인부를 보고는


자신의 남편, 철수가 떠올라 300원짜리 고급커피를 뽑아 그에게 건냅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건설인부가 아닌 삽질하는 척만 하는 회장이었던 것입니다.


기자들 앞에서 삽질하는 겸손함을 보여주려는 가식이 극에 달한 모습이 


마치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서 떡복이나 먹어대며 


서민 코스프레로 당선된 어떤 할머니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영희는 분노와 억울함이 극에 달합니다.


자신은 100원짜리 일반 커피를 먹지만


일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300원짜리 고급커피를 뽑아 주었지만


이런 것은 줘도 먹을 수 없는 커피라며 


자신은 케냐산 커피를 즐겨마신다는 말에,


그리고 삽질하는 척만 하는 이런 할아버지를 향해 영희는 이런 애절한 대사를 쏟아 놓습니다.


"누구는 평생 삽질만 해도 잘 살아지지 않는데 할아버지는 삽질하는 척만 해도 잘 살아지나요?"


영희의 이 대사는 처절하리만큼 자신의 삶의 깊은 바닥에서 꺼내 놓는 분노와 억울함의 탄식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영희에게 벌어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영희는 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보입니다.


이런 그녀에게 "돈녀"가 접근을 합니다.


돈녀는 그녀의 힘든 상황을 교묘하게 파고들며


자신을 따라가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영희는 자신도 모르게 '돈녀'를 따라갑니다.


돈녀를 따라간 곳은 바로 "돈교"의 본거지였습니다.



     


돈녀는 사람들이 '도'를 닦아봤자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다며


"돈"을 닦으며 돈에게 소원을 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희는 탐탁지 않지만 돈녀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합니다. 




     



그러나 돈녀는 이제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가로 막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굿을 해야 한다며 돈을 요구합니다.


영희는 더이상 있고 싶지 않다면 나가려고 하지만


그냥 나갈 수 없다며 돈교의 무리들이 그녀를 에워쌉니다.


결국 영희는 100만원이나 뜯기고서야 겨우 풀려납니다.



영희는 이런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자신이 그런 사이비 종교에 끌려갔다 온 것이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이제 영희는 자신이 버티고 있던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간 영희에게 벌어진 모든 사건들은


영희에게 절망의 플롯이 되어버려 그녀의 희망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제 영희는 철수를 향해 7년간 담고 있던 말을 꺼냅니다.


철수는 리플리 증후군이었습니다.


영희는 철수가 그간 내뱉은 희망의 모든 메시지가 거짓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희는 7년간 글을 쓰기만 했지 완성하지 못한 철수를 향해 글을 완성할 수 없다며


등단한 지 벌써 7년이나 지났음을 말합니다. 






철수는 등단한 지 벌써 7년이나 지나버린 것을 믿을 수 없어하며 절망합니다.


결국 영희가 철수를 향해 인식시켜버린 현실로 인해 철수가 발견한 절망은


그간 영희가 감내했던 절망의 무게보다 더욱 심각한 결과를 향해 진행됩니다.





     



연극의 플롯은 그간 영희의 핸드폰으로만 등장했던 영희의 어머니를 등장시킴으로 인해


그간의 모든 갈등의 원인을 폭로합니다.


영희의 어머니 역시 리플리 증후군의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영희의 오빠는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영희의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현실에서 살고 있는 불쌍한 인생일 뿐입닏.


하지만 영희는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자신의 남편 철수에게 했던 것 처럼


인정하기 싫은 처절한 현실을 인식시킵니다.




영희는 자신의 남편 철수와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간 그녀 자신이 홀로 힘들게 버텨왔던 


절망 뿐인 현실을 인식시켜 버린 셈입니다.


 





집으로 돌아 온 영희는 7년 간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갔던 적이 없었던 철수가 


한 번도 입은 적 없던 정장을 입고 삽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영희는 이런 철수의 모습이 낯설지만


그간 꾸준히 해왔던 삽질을 보며 이름모를 안도감을 발견하는 것일까요? 





철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해 삽질만 하다보니 삽질을 더 잘하게 되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집니다.


사실 철수는 영희가 그간 자신의 절망의 현실 속에서 생겼던 불면증을 위해


병원에서 받아 왔으나 먹지 않고 보관하던 수면제를 모두 먹어버린 상태입니다.



철수는 그간 자신이 글을 쓰기 위해 팠던 구덩이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잠이 듭니다. 





그렇게 부활을 꿈꾸며 잠이 들어버린 철수를 바라보는 영희,


영희는 철수를 향해 제발 집 밖으로 나가서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보길 원했습니다.


철수는 결국 영희의 소원대로 7년 만의 외출을 하고 돌아와 자신의 구두를 고이 놓고 잠이 들어버린 것입니다.


영희는 철수의 잠든 모습을 통해


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절망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영희는 자신이 직면한 절망의 상황에서 


철수가 벗어놓은 구두를 집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철수가 삽질을 하며 팠던 구덩이 밖에


놓여 있는 한 켤레의 낡은 구두를, 그 흔적을 말입니다.





<그림자 기법의 연출을 통해 그리고 싶던 내면와 현실의 일치>



   

      

   



연극 삽질의 원작자 정미진 작가는 자신의 글의 마지막은 


단순하게 철수가 자신이 판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명옥 연출은 너무나도 처절하고 아픈 비극에다가


무엇인가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남명옥 연출이 구상한 것은


등장인물의 내면과 현실의 부조화를 그림자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과 내면의 모습이 일치하는 세상이 오길 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철수가 구덩이에서 잠들고 난 이후


영희의 마지막 대사,  "그러면 나는, 영희는.....무얼 하고.....살지?" 를 마친 후에


그간 진행되었던 모든 그림자 기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진행시킵니다.



아마도 이것은 절망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현실이기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마치 철수가 구덩이 안에 앉아서 '나는 이곳에서 부활을 꿈꾼다'고 했던 것 때문일까요?


그림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모든 상황을 반복하여 진행합니다.





"그러면 나는... 영희는... 무얼 하고...살지?"



영희의 마지막 독백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탄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영희가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멈춤의 순간의 호흡은


새로운 희망에 대한 갈급함의 호흡은 아닐런지...


연극 <삽질>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살아내줘 고마워요>


나무시어터 의 연극 <삽질> 공연 시작 전 음악으로 사용된 '노래짓고 부르는 Ine Kim 이내'의 앨범,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6번째 트랙의 "사랑하듯 사랑하듯"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연극 <삽질>에서 영희는 삽질하는 척만 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누구는 평생 삽질만 해도 잘 살아지지 않는데,

할아버지는 이렇게 삽질하는 척만 해도 잘 살아지나요?'

영희의 애절하고도 한맺힌 이 대사는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내의 '사랑하듯 사랑하듯' 노래의 가사는 

바로 이런 영희의 애절하고도 절박한 마음과 완벽하게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중 6번째 트랙 '사랑하듯 사랑하듯'>


살아줘서 고마워요 살아내줘 고마워요
곁에 이렇게 머물 수 있으니
그저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리워서 고마워요 애틋해서 고마워요
곁에 이렇게 머물 수 있으니
그저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그대
아무일도 없는 하루라해도


살아줘서 고마워요 살아내줘 고마워요
살아지지 않아줘서 그리워서 애틋해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노래를 들으면서 삽질의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가 노래 가사에 가득 묻어있는 듯 해서 눈물이 납니다. 

귀한 앨범을 선물해 주셔서 고맙고,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찌보면 연극 <삽질>의 원작은 비극이었지만,


 남명옥 연출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 <삽질>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런 비극으로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줘서 고마워요.." 살아내줘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드러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죽일놈의 삽질 – 절박한 일상에 대한 풍자와 해학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

2015 창작초연작 / 대전문화재단 2015 창작예술 지원작


연극 <삽질>


2015년 6월 11일(목) – 21일(일)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4시 (월요일 쉼)

드림아트홀 (대흥동, 성모병원 오거리)


정미진 작, 남명옥 연출

이석규, 손정은, 지선경, 박은숙, 임지애, 배다솜, 임기훈, 손해달 출연

제작, 기획: 니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 (http://www.namuart,kr)

후원: 대전문화재단, 커튼콜(http://www.curtain-call.co.kr)

문의: 070-8778-8606 / 042-321-1638







<100% 사심의 글>


역설적인 희망의 삽질, 연극 <삽질> 리뷰


무대에 올리며 메르스 여파로 인해 많은 걱정이 있었지만 연일 만석의 기록을 세우며 


10일간의 뜨거웠던 삽질의 흔적을 기록으로 담아내기엔 부족하고 아쉬운 필력이지만 


지난 6월 11일부터 21일까지 드림아트홀의 무대에 올렸던


 나무시어터의 연극 <삽질> 리뷰를 이틀에 거쳐 완성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연극의 기획, 연습, 리허설, 프리뷰,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까지 지켜보면서 


이름모를 애정이 생겨버린 <삽질>입니다. 


5번이나 연극을 보다보니 중요한 몇 가지의 대사도 생각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남명옥 선생님의 연출로 인해 처절한 비극에 역설적인 희망의 옷을 입은 <삽질>



* 무대에서 열정을 쏟아부은 영희 역으로 열연한 Jeong-eun Sohn 손정은 배우, 


노련함으로 철수역을 열연한 이석규 선생님, 


엉뚱하리만큼 철부지 과외생 역을 맡은 배다솜 배우, 


너무나도 배역에 젖어든 돈녀 역의 지선경 배우, 


영희의 친구역으로 나온 박은숙, 임지애 배우, 


삽질하는 척 했던 회장역의 손해달, 그의 비서 역의 임기훈 배우!



* 스탭으로 수고한 전은영, 성용수, 도영실, 임황건, Jungsuk Jo, 정우순



* 연극의 비극적 상황에 희망의 옷을 입힌 가수 Ine Kim Yaong Kim


모두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좋은 작품과 연출, 노래로 감동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덜뜨기 덜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