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소개하는남자



최근 세종시를 둘러싼 복잡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중심에 과학비지니스벨트가 있다.
그리고 그 벨트의 중심엔 "중이온가속기"가 있다.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에는 중이온 가속기를 넣었다가 원안으로 가게 되자 이 가속기를 슬그머니 빼 내버린채
과학비지니스벨트를 원점에서 재 검토하겠다고 한다.

거참...씁쓸하다.
세종시의 그 자리에는 중이온가속기 자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그 증거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한참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홍보를 올리고 있던 2010년 1월 21일, 한 장의 편지가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서울
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7-6 정부종합청사
세종시 정부 지원협의회

에서 보낸 편지였다.


정부청사에서 무슨 연유로 직접 우편물을 배송했을까?
궁금하지만 조심스럽지도 않게 뜯어버렸다.

그랬더니 종이 한장 달랑 들어있었다.






(원본: 행복도시건설청 홈페이지,
http://www.macc.go.kr/macc001/sejong/sejong.jsp?Menu_Id=sejong)







그런데 원안발전방안이라는 대조적인 제목으로 되어 있었다.
원안과 수정안이라는 단어가 더 공식적인 문구일텐데 말이다.

원안과 발전방안을 한참 비교해 보니 고층건물들이 마구 늘어났고, 주거지역들은 축소되었으며,


중이온가속기라는 낯선 하나의 존재가 보인다.


원안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고층아파트가 별로 없다.
그만큼 투기를 원천봉쇄하고 좀 더 자연주의적으로 편안한 주거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게다가 공장과 같은 단지가 추가로 늘어났다. 말만 첨단녹색산업단지라고 했지, 쉽게 바꾸면 공장 아닌가?

발전방안을 자세히 보니 중앙의 행정중심타운지역(세종시청 예정지역)에 21세기를 뛰어넘는 22세기형 건물들이 보인다.


앞면을 펼쳐보고 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기뻐서가 아니라 정말 웃겨서...정말로 웃겼다....개그콘서트 몇 번 보는 것 보다 더 웃겼다.)

특히 마지막 문구가 더 나를 웃기면서도 슬프게 만들었다.

* 현 정부 임기 내 모든 시설을 착공합니다.

- 세종시에 들어올 모든 시설을 2012년 이내 착공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정말로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왜 갑자기 2012년이라는 단어를 보며 영화 2012가 생각이 났을까?

(원본출처:  
http://www.2012movie.co.kr/ 공식사이트)



그래서 뒷면을 펼쳐 보았다.

읽다보니 "원주민"이 되어버린 충청도 연기군 금남면민들이 불쌍해졌다.
아직도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여 원주민들을 정복해 가는 정복자들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원주민 처럼 미개한 백성들로 생각하며 문화를 발전시켜 주려는 개선장군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주민을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보면 모든 혜택들이 2배씩 늘어난 것 처럼 보인다.
대단한 배려다. 이런 배려가 사람들에게 정말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하긴, 정말 힘이 난다.
이런 전단지를 받아보니 정말 힘이난다.
내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여하튼, 시간은 흘러 이런 수정안이 폐기되었다고, 그것도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좌절되고 나니, 과학비지니스벨트까지 충청권에,
그것도 세종시에 주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모양새다.


중이온가속기, 이것은 과학비지니스벨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이온가속기를 세종시에 넣어 주겠다고 해 놓고는 수정안이 부결되었으니 이것도 없던일로 하겠단다.

최근에 벌어진 세종시에 이어 과학비지니스벨트 논란을 보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씁쓸함은 뭘까?


솔직히 원안이니 수정안이니...이런 건 잘 모르겠다.
과학적인 마인드도, 경영적 마인드도, 게다가 도시공학적 지식도 없는 내가 보기엔 원안이니 수정안이니 구별의 능력도 없다.
다만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보건대, 신뢰와 약속의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기가 내세운 것을 스스로 뒤집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자기모순처럼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런데 2011년 대한민국은 자기모순을 뛰어넘어 자기부정까지 치닫는 모양새다.

중이온가속기...그게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다.
과학비지니스벨트를 왜 세종시에 준다고 했다가 주기 싫어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질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안을 내새울때의 열정이면 세종시도 10년 앞당길 수 있고,
수정안을 내새울때의 열정이면 중이온가속기도 보낼 수 있고,
수정안을 내새울때의 열정이면 과학비지니스벨트도 충청권에 보낼 수 있을텐데...

그 열정이면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세계일류국가로 만들 수 있을것 같다.

대한민국, 다시 그 열정을 회복하길 바래본다.


몇년전, 한 TV 코메디 프로에서 나왔던 '난 3살부터 신용을 잃었어'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난 3년전부터 신용을 잃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터진다.

대전시청홈페이지 대전시청공식블로그 대전시 공식트위터



Posted by 공소남 허윤기 덜뜨기


어제였다. 4.19혁명...
1960년 4월 19일, 그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독재와 억압에 항거한 시민들의 혁명, 자유에 대한 갈망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어제는 이 나라의 소위 대통령이라는 '분'의 연설이 있었다.
눈물의 장면에서 TV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정말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군 통수권자로서 겪어야 할 아픔이었을까?
기득권에 대한 수호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읽은 문구가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조선시대 당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1년에 1.6명꼴이다. 
우리 선조들은 당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의'라는 말을 썼단다.
당의의 기본원리는 '상대방의 존재와 비판에 대한 인정'이다.

당의가 가장 치열했던 숙종시절 백성은 가장 살기 좋았단다.
왜냐하면 숙적이 눈에 불을 켜고 잘못을 지켜보고 있으니 잘못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17세기 중엽이 넘어가며 정의와 공익, 공론을 위하던 당의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변질되었다.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서...

<조선시대 당쟁사 요약>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지도력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과거 4.19의 모습이 그러하다.
자신의 잘못을 포장하고 변명하며, 그것을 이해시키며 눈물이라는 저급한 Pathos로 다가간다면
잠깐의 설득은 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기에 포기할 것이 두려워 하는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상대를 숙청했던 17세기 당의의 모습이 오늘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오늘 인터넷 기사에는 '대통령마저 외면한 금양호 98호 선원'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들 또한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비극일진정,
이들을 위한 눈물과 역사의 비극에 대한 눈물은 어디로 갔는가?

   "민중은 무지하다. 
    그러므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들의 기억에서 속히 사라질 것이다."

혹시 이런 시대적 착오를 갖고 언론을 장악하는 자는 결국 그 언론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역사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괴벨스처럼 '1%의 진실과 99%의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한다면
얼만큼은 효과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의 결국은 그러하지 못하다.





1960년 4월 19일, 그 날의 함성과 열기는 오늘날 사그러지고 없다.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유행을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4.19가 무슨 날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답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역사'를 선택으로 바꾸는 교육이야말로 민중을 무지로 이끄려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는 그 역사를 반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양심은 경제인의 왈력에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현실이 시대적 유행이라면 나는 그 유행을 과감히 버리겠다.

1905년 11월 20일, 그 날의 시일야방성대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장지연 선생의 슬픔의 글은 마치 성서의 예레미야의 애가(슬픈노래)와 다를바가 없다.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시일야 방성대곡 한글 번역문>


시일야 방성대곡,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리라'

구구절절 애절함과 애통함이 묻어나는 장지연 선생의 글이 작금의 시대에 병행댓구로 자꾸 생각이 날까?
쇠고기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천안함의 슬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그 날의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 더욱 슬프다.

그 날에 그렇게 사라져 간 그들의 피흘림의 자취가 
오늘의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래본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는 없겠으나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는 자가 없는 현실이 나를 더욱 술푸게 한다.


[덜뜨기의 마음으로 담는 세상=허윤기]

Posted by 공소남 허윤기 덜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