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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4 1929년, 산골짜기 동네에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다.


<1929, 산골짜기 동네에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다>

 






사부동 교회(경북 의성군 봉양면 사부동) 현재 노매실 교회 (1929년 초임 1931.6.27.)



  구세군 사부동 교회(경북 의성군 봉양면 사부동)는 조부께서 1929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 발령받아 목회를 시작한 곳입니다. 이 사부동은 가구수가 총 47호였는데, 조부께서 목회를 하는 3년 동안 46호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구세군 사부동 교회는 191139일에 처음 개척을 한 곳으로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조부의 목회 이전부터 영문 건축목적 헌금 400(당시 소 한 마리 3)을 모아온 헌금을 11명의 개인이 개인들의 친목자금이라 주장하여 그간 건축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조부께서 대화로 해결하여 400원의 헌금을 다시 회수하여 당시 최신식의 건물로 건축을 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새로 건축한 구세군 사부동 교회를 배경으로 낙평으로 떠나기 전에 촬영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 건물에 이 정도 교인이라면 동네가 제법 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현재의 사부동 교회를 찾아봤습니다(현재 노매실). 동네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동네가 총 47호라는데 정말 산골에 이 동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지금도 이렇게 산동네인데 85년 전에는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당시 27살의 조부께서 첫 목회지에서 이런 일을 하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펼쳐보며 흔적을 더듬어 가면 갈수록 저 역시 사진 속의 세상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 흥분이 됩니다.

 

 



  침례교 교회진흥원 류정선 목사님께서 1997년에 쓰신 사부동(현재 노매실) 교회에 관련 글을 보내주셔서 소개합니다. 목사님의 기록에 따르면 사부동교회 건물 2차 건축을 1930년에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조부께서 하신 것입니다. 자료를 보내주신 류정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떠나는 사진여행 : 의성 구세군 노매실 영문

 

바위를 뚫는 뿌리의 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 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이사야 60, 1 - 3

 

구세군 노매실 영문

 

요즈음 필자는 한국교회사를 영상에 담은 복음의 땅 한반도란 비디오 테잎을 구입하여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마다 시청하고 있다. 복음의 불모지인 낯선 이 땅은 찾은 선교사들의 이야기와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 초대교회의 수난과 순교, 그리고 눈물 속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으면서 성장하는 한국교회의 부흥은 믿음의 선배에 대한 경외심과 목회자로서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이러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뜻 있는 탐방이 되었다. 대구를 거쳐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중앙고속도로를 역류하여 경북 의성을 빠져 나왔다. 봉양면을 지나 917번 도로를 10여분 달리면 사부 1리 초입이 나오고, 여기에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노매실이란 옛 이름의 사부 2리가 나온다.


계절은 벌써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산천초목에 물이 올라 신록의 싱그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무논의 어린 모들은 수면 위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고, 야산의 마늘 밭은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잎 끝이 바짝 타고 있었다. 사부 2리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과 십자가 첨탑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구세군 경북지방 노매실 영문이다. 구세군은 성탄 자선남비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만큼 생경한 교단이기도 하다. 편제와 용어가 상이해서 왠지 어색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개신교단의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감안하니 다감한 정취가 생겨난다.

 

 

전통의 뿌리가 깊게 자리 잡은 교회

 

필자가 정오 무렵에 도착하였다. 이번 여행은 대전 성남동 영문의 김최환, 최을순 사관 내외분이 동행을 하였다. 구세군 교회를 소개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더니, 노매실 영문을 추천하고 기꺼이 동행을 해주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였는데 조태규, 김향복 사관 내외와 최재구 정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떻게 시장기를 알았는지 금새 식탁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신토불이라 했던가! 된장국에 조가 노랗게 섞인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치워버렸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옛 맛이 실린 식사였다. 식사를 하면서 원고정리에 필요한 얘기를 두서없이 나누었다.

 

노매실 영문은 84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통의 뿌리가 깊게 자리 잡아 비록 산골이지만 아름다운 교회의 내적인 모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노매실 영문은 이 땅이 일본에 합병된 다음해에 배주역 군우(성도)가 처가인 이곳에 와서 가정예배를 드리다 강국원 정교(장로)에 의해서 3월에 개영(창립)되었고, 초대 유진선 사관(목사)이 부임하여 그해 구회당 명칭으로 예배당을 세우는데 석가래를 70리 밖에서 가져왔고, 흙 돌을 손수 찍어 건축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까지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한다면 교회를 사랑하고 헌당하려는 초기 성도들의 땀과 기도를 생각치 않을 수가 없다. 이곳 예배당은 마을 중앙에 2차로 1930년에 다시 교회를 헌당하였는데 아쉽게도 일제하에 의하여 1942년 철거를 당하였다. 이 당시 50여호의 모든 주민이 출석할 정도로 가장 부흥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회는 해산되었는데 당시 박경학 정교가 가정 예배를 이끌면서 해방 후에 그 전통을 이어가다 1958년에 초가 4칸으로 3차 헌당을 하였고, 이때 사부동 영문을 노매실 영문으로 개명하였다.


지금의 예배당은 5차 헌당을 한 것인데 19877, 대지 212평 건평 38평 사택 18평을 건축하면서 본 영문 출신의 강환구 장로(대구 침산장로교회)가 공사를 맡아 온 군우의 자발적 참여로 25백 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당시 상황은 연인원으로 살펴보면 군우 515, 가정단 250, 모래자갈 256, 경운기 239, 기술자 153명이 수고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이번 탐방은 거의 취재가 필요없었다. 교회(편의상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의 연혁을 초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자료가 첨부되어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그 오랜 역사를 소홀함 없이 모두 기록하여 어느 누가 보던지 그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다. 물론 교회 연혁 및 목회일지를 지방 장관에게 매년 인준을 받아야 하는 구세군의 특성도 있지만 한국의 모든 교회가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 부족한 것 같다. 교회 연감을 만들면서 그 사료가 없어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비! 조금만 내리세요(?)

 

노매실(老梅實)은 늙은 매화나무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옛날 어느 노씨라는 사람이 칡이 많아 피난처로 생각하고 들어와 마을이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지만, 그보다 오랜 전통의 교회가 복음의 열매를 맺고있다는 뜻의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생겨난다. 이곳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첩첩산중이라서 울고 와서 울고 가는 교회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노매실로 부임할 때 하나님의 뜻이란 믿음으로 지금까지 49명의 담임이 부임하여 그 토양을 일구고 가꾸었다.


조태규 사관(43)은 호남신학교를 졸업하고 김향복 사모와 함께 구세군 사관학교를 87년도에 졸업하고 충북 보은 영문에서 사역하다 노매실로 발령을 받고 923월에 이삿짐과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계속 교회를 찾아 산 속을 들어왔지만 마을이 나오질 않아 하늘 보고 울기도 하였다는데, 모든 성도가 모두 나와 부임을 환영할 때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고, 이제는 목회를 하며 감사한 일들이 많아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노매실은 현재 40세대 13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업은 약간의 논과 밭을 일구고 있으며 고추, 마늘을 생산하고 있다. 주민의 평균연령은 57.5세로 고령화 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동 진학은 도리원 초등학교로 12, .고등학생은 봉양으로 18명이 통학하고 있다. 모두 10리가 넘는 곳인데 초등학교는 교육청 버스가 운행되고 있고, 학생들은 조태규 사관이 작은 버스로 통학시키고 있다.


교세 현황은 병사(세례교인)130여명으로 출석군우는 45명인데 정교 4, 부교(집사) 36명이 직분을 맡고 있다. 마을의 학생은 모두 출석하고 있으며 강성인 정교와 몇 명의 청년이 교회학교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가정단(여전도회)은 그 운영과 사회 봉사가 전국 구세군 영문에서 모범적인 기관으로 선정이 되어 515일에 군국(총회)의 우등상을 받았다. 마을의 마늘 수확을 협동으로 일하여 받은 노임을 모아 사회 구제와 여성사업(주민 교육 및 친교)에 앞장 서고 있다.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기독교 식으로 통일하여 상여를 십자가로 덮은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조태규 사관은 후덕하고 푸짐하다. 체격에 어울리게 마을과 교회의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학생 통학을 위하여 버스 운행을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모두 신앙을 갖게 하였고, 부임하자 마자 주민들의 숙원인 초등학교 편제 구역을 옮기기 위하여 교육청과 기관을 뛰어다닌 끝에 산 너머로 다녀야 했던 학생들의 불편을 해소하여 마을 전체의 초등학생을 전학시킨 노력을 인정 받아 주민들은 교회에 협조적이라고 한다. 특히 청소년 선교 및 교육에 관심이 많아 대구, 경북지역 경생보호위원으로 활동하여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매실 영문은 봉양면 지역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참 담소를 나누는데 김향복 사모가 마을 형편을 슬쩍 언급하고 나섰다. 의성 마늘이 전국적으로 그 매운 맛이 일품인데 그것은 가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가뭄만큼 매운 맛이 드는데 비가 오질 않아 목회에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매년 계속되는 한해(旱害 )로 인해 늘 하늘 보고 하나님 비 안주면 어떻게 합니까?’하며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은 올해의 기도 제목을 아예 거두어 가셨다. 중앙에서 호주의 어느 군우가 헌금한 약 45백 만원을 지원하여 마을에 양수장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사업을 위해 당국의 지원과 주민의 협조를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교회에서 매년 농촌과 도시를 잇는 농산물 직거래를 주선하고 있다. 마늘과 참깨, 고추를 교회나 기관의 사업차원으로 추진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노매실 영문으로 연락하면 양품의 농산물을 정량으로 수매할 수가 있다. 매년 대량으로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신용은 한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고 함께 있던 최재구 정교가 귀 띰을 한다.

최재구 정교(64)는 다른 분도 마찬가지지만 노매실 영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그 품에 안길 산 증인이다. 7월이면 40주년 장기근속을 한다. 정교 근속도 24년 째이다. 금년부터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종을 치는 청지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강성우 정교(86)가 장애를 무릅쓰고 이 일을 담당했는데 근력이 달려 그 끈을 넘겨주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장 큰 일을 주셨다고 감사한 마음으로 노매실의 하늘에 천상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최재구 정교의 아들로 재천 영문(최영호 사관)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구세군이 아니면 갈 곳이 없을 정도로 온 식구가 구세군의 일꾼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노매실 영문은 교단의 근속장을 받은 사람이 모두 11명이 될 정도로 그 역사만큼 한국 교회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13(구세군 5 성결교 4 감리교 2 장로교 2)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들 목회자를 초청하여 내년 85주년 기념예배를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한국교회의 미덕인 용대 영문(62)과 도리원 영문(83)의 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

 


구세군 최초의 순교자 : 노영수 사관

 

노매실 영문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구세군 역사에서 최초이며 유일한 순교자인 노영수 사관의 출신 교회라는 것이다. 노매실에서 출생하여 이 곳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구세군 사관학교를 마친 노영수 고등참령(참령은 임관이후 20년이 지나야 부여되는 구세군의 계급단위)은 마지막으로 진주 영문에서 사역을 하다가 한국동란 중 피난을 가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결국 공산군에 잡혀 19509553세의 일기로 지리산 기슭에서 총상을 당하였다. 그분의 사위로 감신대 이기춘 총장과 원주 기독병원 원목실장인 노태식 목사가 있으며, 순교를 기념해서 진주에 그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신앙의 물줄기는 마르지 않고 있다. 나무는 지상에서의 줄기보다 세배가 넘게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뿌리는 물을 찾아 바위를 뚫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에 구세군 노매실 영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국교회의 한 부분을 소리없이 자리잡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교회 주소 : 769-910 경북 의성군 봉양면 사부2331

(전화) 0576 - 32 - 2407






Posted by 덜뜨기 덜뜨기